2022.05.01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
(딛 2:11~14, p.348, 엡 6:1~4)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줄줄이 들어 있습니다. 자녀 부모 부부 등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다 주는 관계와 만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아 주셔서 행복한 가정으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부모된 입장에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문제는 해결이 되었으나 전인적으로 건강한 자녀로 양육해 내는 일은 과거보다 오늘날이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님의 기대와 축복 속에서 잘 성장하여 장래를 스스로 헤쳐나갈 뿐만 아니라 영육 간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엡 6장 4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 양육의 지침을 말씀하십니다. 자녀 양육은 부모가 가진 가장 엄숙하고 고귀한 책임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위탁하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먼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녀로 분노를 쌓아가게 만들거나 반항심을 키워가지 않도록 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일관성을 가지고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방치, 편애, 감정 풀이, 무책임 등의 양육 자세는 금물입니다.
다음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삶의 모범을 보이며 훈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훈’이라 교육, 훈련이란 의미도 있고 체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훈계“는 주로 말로 타이르면서 잘못된 것을 교정(矯正)하고 시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징계. 채찍질, 회초리’입니다.
히 12:8~11에서 징계는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징계를 통하여 자녀들이 전인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징계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자녀들은 징계를 받을 때,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연단의 기회로 삼아 선한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 상징적으로라도 ‘사랑의 회초리’를 하나씩 준비해 두었으면 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이 심하게 도전받는 오늘날에도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성경적인 원칙을 붙들고 실천할 때,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더욱 견고하고 행복하며 사회에서 모범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성경적인 원칙을 따르되 방법에 있어서는 창의적인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좋은 실례로 조선 시대 황희 정승이라고 하는 매우 어질고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자식에 대한 교육의 일화가 있습니다.
정승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국가의 최고 관직에 있으니까 살기가 좋았습니다. 아버지를 믿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어느 날 아들이 술에 취하여 집 대문에 들어서니까 황희 정승이 아들을 보고 정중하게 절을 하면서 “어서 오십시오, 어른!” 인사하며 아들을 맞이했습니다. 아들이 깜짝 놀라서 “아버님, 접니다. 아들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황희 정승이 “아비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 자는 아들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손님으로 정중히 모시겠나이다. 여봐라! 이 어른 잘 모셔라. 진짓상 잘 차려드리고 잠자리 편안히 해드려라.”
하인들이 “예!” 그렇게 하고 쩔쩔매니까 이 아들이 몸 둘 바를 모를 거 아니겠습니까?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승의 정장을 하고 가서 구부려 절을 하면서 “밤새 편히 쉬셨나이까? 이제 일어나셔서 세안하시고 아침상을 드소서.”
날마다 이러니까 아들이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하며 항복했습니다.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인데, 우리 교회는 창립기념 주일과 겹쳐서 첫째 주일을 어린이와 어버이 주일을 동시에 지키고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헤아려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하는 일이 될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들에게는 복을 약속하시면서까지 효도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고 하십니다.
먼저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을 상고합니다.
①“자녀들아” 여기서 자녀란 부모의 후견 아래 있는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를 뜻합니다.
②“주안에서 순종하라” 순종은 자녀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자녀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해야 할 명령입니다.
그런데 순종할 것을 명령하면서도 주안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믿음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③“이것이 옳으니라”는 말씀은 성서에 비춰볼 때(출 20:12), 본성에 비춰볼 때, 자녀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가르침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고 하십니다.
①“공경하라” 공경이란 높이고 자랑하며 따르는 마음과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올리는 존귀와 같은 뜻입니다. 공경 없는 순종은 억지가 됩니다. 마음과 생각에서 그리고 행실에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해 드리고 그분들의 결점이나 약점 까닭에 무시하는 자세를 갖지 않아야 합니다.
②“약속 있는 첫 계명” 십계명 가운데 축복의 약속이 있는, 으뜸이 되는 유일한 계명입니다(출 20:12).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까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라고 했을까?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가 많지 않기 때문이요 어려서 부모를 공경치 않는 자는 장성하면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효도하는 일에는 어떤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①“잘 되고” 영육 간의 축복을 말합니다. 장수의 복에 앞서 잘 되는 복이 온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②“장수하리라” 자신의 생명의 뿌리를 인정하는 일은 자기 생명의 경외심과 통합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오래 사는 복을 얻습니다.
구체적으로 자녀들이 효도하는 방법을 몇 가지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자녀가 자기 앞가림을 하는 것이 효도의 첩경입니다. 부모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도록 사는 것이 효도입니다.
둘째는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좋은 효도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부모님 입장에서 마음을 써 주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자녀들이 신앙생활 잘하면서 부모님도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 되도록 하는 것이 큰 효도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로 구원 얻게 하시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기 백성으로 양육하시는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은혜와 교회 사역의 목적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첫째,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은혜입니다(11절).
‘구원’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저주 아래서 건져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이 사실을 믿게 하시고 견고한 신앙으로 서게 하십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주시는 부모님의 은혜가 일치합니다. 부모님들의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안전한 생활을 하도록 돌보아 주심이 한량없습니다. 부모님들은 가시고기와 우렁이와 같이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가시고기>는 산란기에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놈은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침입자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쯤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물고기입니다.
<우렁이>는 제 몸에다 알을 낳는데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면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한 점의 살도 남김없이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고 빈껍데기가 되어 조용히 물에 떠내려갑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부모님의 생명 주심은 전적으로 나의 노력이나 수고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우신 은혜입니다.
둘째, 12절을 보면, 양육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본문에서 양육(훈련, 가르침)을 두 가지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버리는 법을 배우게 하라고 합니다.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라고 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도록 가르치라고 합니다. 채우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버리게 하는 것을 가르침이 먼저이어야 한다는 데서 생각할 부분이 많습니다.
다음으로 채우도록 도움을 주는데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게 하라고 하십니다. 신중함은 자기 내면의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요, 의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정함을 말하며, 경건함은 경외심과 순종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자기 자신과 관계, 이웃과 관계, 하나님과 관계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양육시키라는 뜻입니다.
테일러라는 교육학자는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의 92%는 부모로부터 오고 8%는 나머지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스승은 부모입니다.
셋째, 14절을 보면, 하나님과 부모님은 자녀들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는데 목적과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한 일”이란 양육을 받은 자녀들이 맺혀내는 열매를 가리키는데, 봉사와 섬김을 통해 공동체에 유익을 주며 하나님과 부모에게 영광이 돌아가도록 사는 일입니다.
마 5장 16절을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엡 4장 12절에서는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선한 일”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한 일들’을 말합니다. 복수형입니다. 성경에 언급된 ‘선하다’는 언제나 거의 예외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특정한 사역을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이 경건하고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음 7가지를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1. 항상 기도하는가?
2.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4. 욕심내는 것은 없는가?
5. 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 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14절 하반절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서 “열심”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들이 샘나도록”, “시새움을 느끼도록”, “투기를 느끼도록”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를 시새움 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될 만큼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부모님들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착하고 선하게 자라서 형제간에 우애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회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사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사역도 하나님과 부모님들의 기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구원을 얻도록 전도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통해 양육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위해 일꾼으로 세우고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자녀들이 하나님과 부모님과 교회의 기대를 따라 선한 일꾼으로 인정받고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문
주님, 우리에게 하나님과 부모님과 자녀들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생명을 주시고 올바르게 자라도록 양육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효도하는 자녀들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 믿음의 가정들을 살펴 주셔서 전인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되어 성공적인 인생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도록 복 내려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