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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0 인생의 허무함을 어찌할 것인가?

덕정교회 2020. 9. 19. 07:56

인생의 허무함을 어찌할 것인가?

(1:1~11, p.948, 1:14, 70, 216)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어떤 노인이 돛단배를 타고 홀로 먼 바다로 나가서 낚시로 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 허탕만 쳤습니다. 무려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85일째 되던 날 노인은 몸무게가 700Kg 나가는 청새치라고 하는 큰 고기를 한 마리 잡습니다. 너무 커서 낚시가 잘 끌려 오지 않습니다. 노인은 며칠 동안 그 고기와 씨름을 했습니다. 줄을 풀었다가 당겼다가 하면서 필사의 싸움을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작살을 던져 죽여서 겨우 축 쳐진 고기를 배 옆에 끼고 노인은 항구로 돌아옵니다.

 

노인은 모처럼 오랜만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노인은 또 상어와 필사의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가까스로 육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기의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앙상하게 뼈만 남습니다. 노인은 허탈한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이 이야기에서 헤밍웨이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마를린 먼로는 20세기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최고의 인기 배우였습니다. 전 세계 남성의 우상이었습니다. 지금도 헐리우드에 가면 상점에 있는 사진 10장 중에 8장은 다 먼로의 사진입니다.

마를린 먼로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마를린 먼로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세계적인 찬사를 뒤로한 채 자신 안에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므로 생을 마쳤습니다.

 

미국인들의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 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이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이야기들은 인생에 있어서 목표의 성취나 미모의 아름다움이나, 물질의 부요함도 민물처럼 밀려오는 삶의 허무함을 막아낼 수 없다는 충격과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허무를 일찍 깨닫게 해 주어서 허무를 극복하는 삶을 찾게 해 줍니다. 전도서의 말씀은 삶에 허무함을 어찌할 것인가를 일깨워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우리 모두 남은 생애가 더욱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한 절씩 읽어가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절 말씀은 전도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했으니 두말할 것 없이 솔로몬 왕을 가리킵니다.

 

솔로몬 왕은 성경 가운데 잠언, 전도서, 아가서 세 권을 기록했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젊었을 때 술람미라는 여자와 나누었던 뜨거운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솔로몬이 중년이 되었을 때 그의 원숙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어떻습니까? 솔로몬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자기가 걸어온 인생길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들을 뉘우치는 심정으로 기록한 것이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큰 지혜를 받았습니다. 권력도 받았습니다. 남보다 엄청난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너무 편해지니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육신의 쾌락에 젖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들 가운데는 이방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급기야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의 꾐에 빠져서 거룩한 땅 이스라엘에 이방의 헛된 우상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징계하셨습니다. 노년에 사방에서 솔로몬을 대적하는 무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라에 환난이 생겼습니다. 평화가 깨져 버렸습니다. 그제야 솔로몬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습니다. 그렇게 하여 참회하는 심정으로 쓴 것이 바로 전도서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의 모든 실수와 실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는 인생 교과서, 인생체험서, 신앙고백서입니다.

 

23절의 말씀은 전도서의 주제입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짧은 구절 속에서 헛되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사용합니다. 헛되다는 말의 뜻은 추운 겨울에 후하고 불어 내는 입김이라는 뜻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생 70, 80년을 살았더니 기껏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똑같은 내용을 3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여기서 해 아래서는 현세에서의 삶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자기가 해 아래서, 이 땅에서 많은 수고를 했지만 결국 자기에게 아무 유익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좀 더 구체적으로 4절 이하에서 해 아래서의 수고가 왜 유익하지 못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연극을 보면 무대 위에 배우가 나와서 자기의 배역을 하고 나면 무대 뒤로 사라지지 않습니까? 또 다른 배우가 와서 자기가 맡은 배역을 연기합니다. 말하자면 땅이라고 하는 지상 무대는 그대로 있고, 한 세대가 와서 살다가 사라지고, 또 그 다음 세대가 오고, 그 세대가 사라지면 그 다음 세대가 또 옵니다. 이것이 되풀이될 뿐입니다.

 

인간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그 예로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해와 바람과 강물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아침이 되면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릅니다. 해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서쪽을 향해서 달리고 또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서쪽으로 해가 집니다. 그것으로 끝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해는 밤새도록 떴던 곳 동쪽을 향해서 또 계속해서 달립니다. 해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지만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또다시 동쪽으로 움직이는 일을 반복합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바람이 남쪽으로 불기도 하고, 북쪽으로 불기도 합니다. 이리 돌고 저리 돌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바람이 그 바람입니다. 결국은 왔다 갔다 하는 일만 반복합니다. 똑같은 일만 지겹도록 반복할 뿐입니다.

 

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강물이 쉼 없이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그러나 강물은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합니다.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서 위로 올라가 구름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비가 되어 땅에 떨어져 강물이 됩니다. 이것이 다시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계속해서 그 일만 반복할 뿐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이 자연의 이치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만물은 결국 다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해는 떴다가 지는데 결국은 그 떴던 곳으로, 원점으로 되돌아갑니다. 바람이 이리 돌고, 저리 돌지만 결국은 원점, 그 불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만 결국은 그 원점인 강물로 되돌아갑니다.

우리의 인생도 예외가 아닙니다. 해 아래서 이모저모로 고생하고 수고하지만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 원점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흙에서 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이 인생이 헛되다는 탄식을 다섯 번이나 반복한 까닭은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모든 수고가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극복하는 데는 전혀 무력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생 앞에는 누구라도 최종 목적지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것은 그동안 내가 노력하여 얻어낸 결과물 곧 자신의 직업 지식 승진 사회적 지위 경력 명성 외모 재산을 모두 빼앗아 버립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토록 허덕거리며 쌓았던 수많은 일들의 마지막 자리, 그 자리가 죽음이라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나면서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인생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일 뿐입니다. 살아갈수록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 뿐입니다.

메멘토리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여기서 문득 나의 이력서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한 줄의 이력을 더 박아넣기 위해 얼마나 바삐 움직이며 살아오고 있는가? 하지만 50년 후, 100년 후, 누가 그것을 기억하겠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이력서를 길게 늘이고 있는 것인가? 나의 인생 계획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나의 이력서를 한 줄 더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부르신 곳에서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1213~14).”

 

이 말씀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라.

2) 나의 인생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라.

3) 영원에 잇대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의 삶, 각자의 몫을 귀하게 여기며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기쁨을 누리면서도 인간의 유한성을 절감하며 하나님 나라의 무한하고 영원한 것을 더욱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는 해 아래서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해 위의인생을 제시합니다. 해 위의 인생이란 예수 천국, 예수 구원을 가리킵니다.

 

인생은 어떤 목마름을 갖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목마름으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인간적인 욕망에 목말라 하던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주님을 만난 이후 수가성 여인의 고백과 삶을 들어 보겠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4:15, 28~3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삶 속에 밀려오는 허무가 있습니까? 삶에 안타까움과 목마름이 있습니까? 바로 그곳은 주님이 들어오셔야 할 자리입니다.

주님을 내 마음과 인생과 사역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으로 모십시다. 내 심령과 영혼이 새로워지고 가치관과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고후 5:17).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무의미, 무 희망, 무질서의 공허와 어둠과 혼돈의 삶을 극복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겸손히 머리 숙여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십니다. 주님 안에서 내 삶의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찾아봅니다.

주님, 내 영혼을 새롭게 하옵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게 하옵소서.

주님, 이 땅의 황무함을 보시옵소서. 부흥의 불길을 보내주시옵소서.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