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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덕정교회 2024. 5. 16. 21:59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2:23~24, 29~30, p.1272, 3:5~7, 183, 191)

 

저는 가끔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천수답이다.’ 천수답이란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내기를 할 수 없는 논을 가리킵니다. 천수답을 짓는 농부는 모내기 철이 되면 하늘만 쳐다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길이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남긴 말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We are beggars, This is true).”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가뭄이 들면 지하 암반을 뚫어 물을 끌어 올리고 스프링클러를 돌려 작물에 물을 공급합니다. 그러니 비를 주십사 하고 굳이 기우제를 지내거나 하나님께 기도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줄 아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버리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유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인간의 재주는 그 다음입니다.

 

찬송 280장입니다.

(1)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가리까.

(2)전부터 계시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주시니 그 사랑한 없네

(3)나 예수 의지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후렴: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아멘

 

본문 23~24절을 보겠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기후를 알아야 합니다. 중동지방에서의 기후와 날씨는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와 비가 내리는 우기로 나눕니다.

그런데 몇 개월씩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에도 동식물이 생명을 잃지 않고 버텨내는 것은 밤중에 내리는 이슬 덕분입니다. 한 밤 중에 소리 없이 내려 주는 이슬을 받아먹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곡식을 파종하고 가꾸는 일은 우기 때에나 가능합니다. 이른 비는 씨앗을 파종하는 시기에 내리는 비를 말하고, 늦은 비는 추수를 앞두고 결실기에 내려서 알곡이 되게 하는 비를 일컫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를 내려 주심으로 메마르고 황량한 들판에 씨앗을 파종할 수 있고, 늦은 비를 내려 주셔서 곡식 낱알이 여물이 들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도 시기적절하게 내리는 비를 약비, 단비라고 하는데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생명과도 같은 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28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역사로 연결시켜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부요함을 주시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고 믿음이 성장하여 열매 맺어 천국 곳간의 알곡이 되게 하십니다.

 

이른 비와 같은 성령의 역사하심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고전 12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심령 밭에 이른 비처럼 오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생명을 얻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받게 하고 믿음이 자라도록 돕습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시며, 내 곁에 와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6~17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제 늦은 비와 같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살펴봅니다. 사도행전 2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늦은 비와 같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며 함께 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들었지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온전히 믿지도 못했습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고향으로 내려가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고기 잡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님을 경험하고 난 후 이들은 믿음과 용기와 담력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로 바뀌게 됩니다. 순교를 각오하며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는 자들로 나서게 되었습니다(1929).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도 만민에게 부어 주시며, 남종과 여종에게 말세에 부어 주시 마 약속하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사모 하십시다. 늦은 비와 같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부어 지면,

 

첫째, 영혼이 영글어져서 알곡 신자가 됩니다. 무르익은 곡식은 추수를 연상케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곡 신자가 된다는 것은 농부가 곡식을 타작하여 즐거움과 기쁨으로 곡간에 들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맞아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즐거움을 유업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3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알곡 교회와 쭉정이 교회, 잘되는 교회와 안 되는 교회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잘되는 교회는 이렇습니다.

1) 교회가 밝고 환하며 웃음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2) 목회자의 성품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너그럽습니다.

3) 말이 부드럽고 긍정적이며 무슨 일이든 한번 해보자고 합니다.

4)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골고루 교회 일을 나누어 합니다.

5) 한 달, 일 년 계획이 미리 세워져 있어 허둥대지 않습니다.

6) 일의 결과에 대한 상과 벌이 확실하며 틀림없습니다.

7) 재미있고 희망적인 설교, 천국 설교를 많이 합니다.

8) 성도들과 목회자가 서로 허물이 없이 잘 알고 있습니다.

9) 목회자가 교인을, 교인이 목회자를 칭찬을 잘합니다.

10) 헌금을 강조하지 않아도 헌금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안 되는 교회의 특징으로는 이렇습니다.

1) 교회가 어둡고 침침하며 조용합니다.

2) 목회자의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하며 융통성이 없습니다.

3) 말이 쎄고, 거칠며 무슨 일이든 안 될 것부터 걱정합니다.

4) 몇몇 사람이 교회 일을 독차지하고 끼어들지 못하게 합니다.

5) 미리 계획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갑작스럽게 일을 합니다.

6) 일을 시작은 했으나, 끝은 흐지부지 되어 버립니다.

7) 죄를 지적하고 겁을 주며 지옥 설교를 많이 합니다.

8) 목회자가 신비주의를 고수하여 성도들은 목회자를 잘 모릅니다.

9) 목회자는 교인을 책망하고, 교인은 목회자를 비난합니다.

10) 헌금을 강조해도 헌금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본문 28, 29절에 기록된 대로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영적안목과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환상은 보는 것을, 꿈은 생각의 세계를, 예언은 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보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마음)에 변화가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미래의 꿈과 비전을 말한다는 것은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대해 대비하며 증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했습니다.

피와 불과 연기의 징조는 두 가닥으로 의미와 뜻이 나누어집니다. 피는 구속이요 불은 능력이며 연기는 상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님을 믿고 알며 누리게 합니다. 불에서는 힘이 나옵니다. 모든 산업 현장에는 불이 생산의 원동력입니다. 교회도 성령님의 불을 받아야 교회가 힘이 있고 교인들이 힘이 생깁니다. 연기는 하늘을 향해 놀이 날아갑니다. 우리의 이상도 우리의 목표도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연기처럼 자유롭게 우리가 추구하는 꿈은 하늘 높이 날아갑니다.

 

그러나 피와 불과 연기는 멸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피는 죽음이요 불은 심판이며 연기는 멸망입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피와 불과 연기가 가득합니다. 인류는 반드시 전대미문의 전무후무한 대전쟁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인 전쟁무기가 무엇에 쓸 것인가? 전쟁 무기 상인들이 무기 소비를 위해 전쟁을 부추일 것이고 테러리스트들이 앞으로는 핵무기조차 사용하려 들 것입니다. 인류는 불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불바다가 될 것이요 피바다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의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며, 종말의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2436~37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늦은 비와 같은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날을 대비하도록 도우십니다.

인류 역사는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산자나 죽은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영혼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며 그 결과 영원한 구원과 심판으로 갈려지게 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셋째,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게 되면, 능력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 구원의 소식을 담대하게 전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마가복음 313~15을 보면 주님께서 12 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이 나오는데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보내사 전도를 하게 하시며 귀신을 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함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할 것은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갖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에 힘쓰고 말씀을 청종하며 예배에 충실할 때, 우리의 영혼에 성령님이 부어져서 영성과 영권과 영력이 충만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처럼 주님과 함께 지내다 보면 주님의 영성과 영권과 영력을 닮아가게 됩니다.

다음으로 전도하는 사역은 죽음을 향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요 귀신을 쫓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사역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성령님을 내 마음속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성령이 임하면,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승리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을 받아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평안과 사랑과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복음송가 <성령이여 임하소서> 가사 말입니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메마른 나의 심령 위에/ 주님의 은혜의 단비 내려 날 흠뻑 적셔 주옵소서/ 주의 권세 주의 능력 지금 이 시간 임하셔서/ 악한 권세 모두 깨뜨리고 주님 나라 임하소서/ 영광 할렐루야 예수의 그 피가/ 내게 승리를 주네 구원이 되시네/ 영광 할렐루야 예수의 이름이/ 능력 되네 소망이 되시네.”

 

기도문/

주님, 우리에게 이른 비와 같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늦은 비와 같은 성령님을 부어주옵소서. 우리의 영혼들이 천국 곡간의 알곡들로 영글어져 가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 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며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온 땅에 복음을 증거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이여 임하시옵소서.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셔서 우리 삶을 통하여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