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06 예수님, 나를 위하여
예수님, 나를 위하여
(사 53:4~6, p.1034, 요 4:23~24, 144, 268장)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목적 중에 으뜸은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예배의 구약적인 용어는 제사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 차려 드리는 음식이요 밥상입니다(민 28:1~2).
그래서 이삭이 야곱이 준비해 온 별미를 먹고 나서 마음껏 복을 빌어 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만복을 내려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고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한다’는 대 명제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 결과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자자손손 저주스러운 운명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요 4:23~24).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자는 신통(神通)하고, 신통하면 인통(人通)하고, 인통하면 물통(物通)합니다.
흔히 예배에는 네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봉헌과 기도와 찬송과 말씀입니다. 봉헌과 기도와 찬송은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라면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람에게로 내려오는 것에 해당됩니다.
우리 개신교는 ‘말씀’ 듣는 것을 중시하여 예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리는 있지만 건강하고 균형 잡힌 예배를 위해서는 봉헌과 기도와 찬송과 말씀의 비중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봉헌의 요소는 흔히 헌금을 드리는 것을 생각하지만 넓고 크게 해석하면 지난 한 주간의 삶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배당에 와서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내내 준비된 예배여야 합니다.
마음가짐이나 옷차림 그리고 헌금도 미리 준비된 가운데 드리면 좋습니다. 옛날 믿음의 선진들은 헌금할 돈을 다리미로 펴서 준비해 두었다가 바쳤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사랑하고 의지하며 주만 따라 살리라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아멘(찬송 50장).”
다음으로 기도의 요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결단하게 하고 뜻을 고쳐 세우게 하고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구약의 성전 구조에서 보면 기도는 성소에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가장 앞쪽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제사의 향처럼 성소의 공간을 가득하게 채우면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지성소로 스며들어 갑니다. 이때 하나님은 흠향하십니다.
기도의 요소는 인간이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가까이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입니다. 깊은 기도, 높은 기도, 넓은 기도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받게 하시네(찬송 364장).”
세 번째로 찬양의 요소입니다. 찬양이란 용어를 보면 하나님을 자랑하다. 높이다. 인정하다. 기쁘게 여기다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편적으로 음악이란 통로를 통해 찬양을 드립니다.
찬양의 은사를 받으면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얻습니다. 찬양에 특별한 은사나 재능이 없더라도 한 곡을 선택하여 부를 때에 반복하여 거듭거듭 반복하여 부르는 것을 권면합니다. 이때 찬송가 가사 말이 마음에 잠기게 되고 찬송대로 기도가 되기도 하며 심령이 은혜로 충만해짐을 경험합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활용하는 방법으로 찬양을 드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찬송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승리가 주어집니다. 치유가 나타납니다. 세상에서도 ‘음악 테라피’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음악의 장르를 활용하여 마음의 병을 치유받게 되고 악령의 역사를 물리칩니다.
찬양은 우리의 감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라면 감성은 지속적인 감정의 흐름을 말합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상처 입은 감정이 치유를 받고 회복을 경험합니다.
이제 말씀의 요소입니다. 말씀은 지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식과 사상과 뼈대와 가치관에 영향을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이 생깁니다(롬 10:17). 말씀은 우리에 믿음의 유무를 가름하는 요소가 됩니다.
말씀을 흔히 영혼의 양식이라고도 말합니다. 말씀을 섭취함으로 믿음의 키가 자라고 근육이 튼튼해지고 건강해집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어떻게 섭취해야 하겠습니까? 여기 밥 한 그릇이 있습니다. 먹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1) 죽을 만들어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도 있고
2) 밥을 해서 젓 자락으로 먹을 수도 있고
3) 손으로 꼭꼭 뭉쳐 주먹밥으로 먹기도 하고
4) 물에 말아 마실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밥을 먹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는 데도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을 약속과 성취의 틀로 접근하면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요 약속입니다. 신약성경은 그 약속과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그림자와 실체처럼 긴밀한 관계성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구원자(메시야)가 오실 것인데 그 구원자가 하시는 일은 어떤 일인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 아래에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의가 교환되는 장터가 열렸다는 뜻으로 ‘즐거운 교환’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음심을 묵상하며 은혜를 사모하는 기간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①- 결박당하시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체포되셨습니다.
②- 채찍에 맞으시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심하게 채찍질을 가해 걸레처럼 살갗이 찢겨나간 어깨 위에 ‘홍포’를 입혀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시며 당하신 고난입니다.
③- 못 박히시며 피 흘려 죽으신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높이 들리게 됩니다. 살과 뼈를 관통해서 못 박힌 손과 발은 몸무게를 견디다 못해 그 고통은 최악에 달하게 됩니다. 마침내 운명하십니다.
④- 가시 면류관을 쓰시며 창에 찔리시는 고난입니다. 가시 면류관은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에 찔리시는 고난은 죽으심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시에 찢겨 진 예수님의 머리는 검붉은 핏방울로 얼룩졌고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⑤- 무덤에 묻히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신 고난입니다. 생명의 주님께서 3일 동안 사망 아래 지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죽으심을 가리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에게는 놀라운 은혜로 전이되었습니다.
①- 칭의의 은혜입니다.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롬 5:1): 그러므로 칭의를 받은 자에게는 죄의 속성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죄함이 없다는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감격과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영원한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②- 구속의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모두 사망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죄값을 지불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사망)을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막 10;45). 이로 인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죄와 사망의 빚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속죄함을 받았습니다(롬 3:24): 자유와 놓임을 받았습니다.
③- 씻음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피로 인하여 모든 죄로부터 깨끗함을 얻었습니다(요일 1:7): 우리 몸의 콩팥 2개가 모두 기능을 잃으면 투석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혈액투석은 환자의 피를 인공신장을 통해 깨끗이 씻어 다시 환자에게 넣어 주는 신대체요법의 하나로, 힘들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치료법입니다. 투석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전신이 붓고 숨이 차지만 혈액투석으로 피를 정결케 하고 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며칠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투석환자들을 대하면서 나는 주님의 보혈을 생각해봅니다. 죄악으로 더러워진 내 영혼이 그리스도의 정결한 피로 씻음 받을 때 새로운 힘을 얻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죄를 짓지만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용서해주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④- 화목의 은혜입니다. 죄의 결과는 관계가 깨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반대로 십자가는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고후 5:19): 지구촌 곳곳마다 일어나고 있는 다툼과 싸움, 분쟁과 전쟁을 생각할 때, 화목과 평화의 소중함이 더욱 귀하게 다가옵니다. 주님 안에서 회목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에서나 인간관계에서 물질과의 관계에서 화목함을 이루게 됩니다.
⑤- 치유의 은혜입니다. 죄의 결과로 일어난 고통, 슬픔, 상처, 저주, 질병을 치유해 주셨습니다(본문, 마 8:17): 불행과 질병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얻습니다. 치유를 세분화시키면,
첫째, 육체적 치유입니다/ 오장육부, 사지 백체의 신체적 질병를 고침 받습니다.
둘째, 감정적 치유입니다/ 불안, 두려움, 미움, 증오, 자기 학대 등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셋째, 의지적 치유입니다/ 도박, 알콜중독 등 잘못된 습관들을 고침 받습니다.
넷째, 영적 치유입니다/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죄를 포함한 인간 내면의 죄성, 죄의 뿌리, 본성의 회복을 말합니다
다섯째, 관계 치유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원만한 만남, 대화, 사귐이 가능한 상태로의 치유를 가리킵니다.
여섯째, 사역적 치유입니다/ 그가 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되는 일입니다(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절~12절에서 “그는”이라는 단어가 28차례나 등장합니다. 여기서 ‘고난의 종’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4절~6절까지 “우리”라는 단어가 9번이나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악으로 만신창이 되어 지내는 인류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요 치유자요 회복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할 죄값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나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때 그 무리들이 예수님 못 박았네 녹슨 세 개의 그 못으로/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주님 눈물로 기도했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비웃는 그 무리들 주의 옷 벗긴 후에 주님 몸 깊이 찔렀네/ 귀중한 그 보배 피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주여 나의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 때 구원을 이루셨네/ 마지막 피 한 방울 나를 위해 흘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아멘.”
교우 여러분! 죄를 지은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고,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치러야 할 죄값을 대신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지만 죄값은 예수님이 치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셨으며,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1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원의 주님으로 마음에 영접하고(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기도문
주여, 우리는 죄악으로 얼룩진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과 죽으심이 필요했건만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주의 구원하심을 거절하고 외면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저희였습니다.
인내와 긍휼로 우리를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우리를 구원과 믿음의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 위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며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영원토록 섬기고 따르며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우리의 심령에 임하시옵소서. 구원의 감격과 체험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