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됨의 복음(갈 4:4~7, p.306, 롬 8:14~15, 542, 305장)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됩니다.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 은혜의 복음, 능력의 복음, 치유의 복음, 화해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 승리의 복음, 천국의 복음 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들 됨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들 됨의 반대 개념으로 ‘종’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으로서 지낸다는 것’은 은혜의 복음이 아닌 것들에 붙잡혀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언약이 아닌 것들에 매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이를 가리켜 천박한 ‘초등학문’ 아래서 종노릇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삶을 말하고, 이방인들에게는 자신의 풍습이나 문화나 지식이나 학문이나 그리고 종교에 사로잡혀 지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3절).
우리 한국인들은 아들 됨의 복음을 받기까지 사주팔자니, 운명이니 하면서 귀신의 지배 아래 지내야 했습니다. ‘육십갑자 십이 지간’을 근간으로 인간의 운명을 규정하여 왔습니다. 거기서 팔자소관이 나오고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 결과 인생을 체념한다거나 피해 의식과 패배 의식 속에서 불평과 원망을 마음에 품고 지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들 됨의 복음’을 들음으로 신분의 변화와 운명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여자와 율법 아래서 나게 하셔서 세상의 초등학문과 율법과 종교와 문화와 풍습 아래서 종살이하는 우리를 속량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4~5절).
‘때가 차매’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인류 역사 가운데 오신 때의 정확성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제임스 스튜어트).
①예수님은 지정학적으로 정확한 위치에 오셨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②예수님은 정치적으로 정확한 때에 오셨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이름으로 황제에 등극하고 거대한 제국을 형성할 때입니다. 그전에는 국가마다 민족마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었는데 이때는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을 때가 되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길을 놓았고 그 길을 따라 복음이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③예수님은 언어가 통일된 때에 오셨습니다. 알렉산더가 헬라 문화를 가지고 세계를 정복해 헬라어가 곳곳에서 공통언어로 사용될 때였다고 합니다.
④예수님은 메시아를 갈망하던 때에 오셨습니다. 특권층 지극히 타락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노리개에 불과한 시대였습니다. 새로운 도덕 출현에 목말라할 때였습니다.
수천만의 신을 만들어서 만 신전을 지어 신들을 초청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채우지 못할 때입니다. 진정한 메시아를 목마르게 기다리던 때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어 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사 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마귀의 종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 2:1~3).
그런데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종노릇 한 데서 자유케 해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들이면 하나님의 후사요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것들을 유업 얻을 자가 되었습니다(7절). 신분의 변화요 운명의 변화입니다.
마 3:17 말씀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런데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고 믿게 되었는가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자들을 세워 역사해 주심으로 우리로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받아들이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심으로 종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을 소유한 자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6절).
롬 8:14~15 말씀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미국 테네시 주의 동쪽 한 작은 마을에 ‘벤 후퍼’라는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은 자녀들이 이 아이와 놀지 못하게 했고 초등학교 때도 왕따였습니다.
그가 12살 때 마을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새로 부임해 왔는데, 그 목사님이 참 좋은 분이라는 소문이 나 그때까지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벤 후퍼가 호기심 때문에 교회에 갔습니다.
일부러 늦게 가서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 때에 살짝 빠져나오곤 하였는데, 어느 주일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 기도하다가 축도가 끝나고서야 일어났습니다,
나오다가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벤 후퍼를 보고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고 물었습니다.
벤 후퍼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라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데, 미소 띤 얼굴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래, 알겠어,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어.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사람들이 순간 모두 굳은 표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계속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거든.”
벤 후퍼는 당황하며 도망치듯 빠져나가는데, 목사님이 그의 등을 향해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소리치듯 말해주었습니다.
이 아이가 후에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날, 젊은 목사님으로부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바로 그날이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서, 마귀에게서, 지옥의 형벌에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잘못된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병들어 있는 마음과 육체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하나님은 이 시간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My Son, Samhyun, I Love You.’ 우리 모두 힘차게 외쳐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아들이면서도 아들로 살지 못하고 종처럼 지내는 기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 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직 어린아이일 때는 아버지 집의 종들에 의해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성인이 되어 참 상속자로 인정을 받기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서 지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분상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영적으로아직 철이 없을 때나 어렸을 때는 종들의 종으로 지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1~3절).
그렇다면 영적 관점에서 어린아이는 어떤 모습을 가리키겠습니까?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때입니다. 아들 됨의 신분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뜻인 줄을 제대로 깨닫지 때입니다.
대기업 회장 아버지를 둔 아들을 한 번 떠올려봅시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물려받을 후계자입니다. 엄청난 특권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됨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이시니 말입니다.
서울 연동교회 고찬익 장로님은 한국 초대교회 역사 가운데 굉장히 큰 업적을 남긴 귀한 장로님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분은 원래 아주 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천민이기 때문에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고씨’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조선 시대에 양반 상놈 제도가 있어 신분이 구별됐습니다. 그런데 상놈 중에서도 아주 최하인 천민 신분으로 자라나면서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면서 술과 노름에 탕진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서 관가에 끌려가서 매 맞기도 수 차례하고 또 빚을 많이 져서 빚 독촉이 심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고씨’가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은 연동교회의 초대 담임이었던 게일 선교사님을 통하여서 예수님 믿게 된 것입니다. 하루는 선교사님이 고씨를 만나서 야곱의 이야기가 담긴 ‘네 이름은 무엇이냐?’라고 하는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날 밤에 잠을 자다 꿈을 꾸는데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그때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성령님의 음성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이름은 고가요, 싸움꾼, 술꾼에, 망나니올시다. 뉘신지 모르지만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울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흰옷 입은 사람이 나타나 저의 몸을 치면서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전도지를 읽고 또 읽다가 성령님을 받고 눈물 콧물로 회개하며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을 찾아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깨닫고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제 이름은 고가요. 이제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수시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교제를 항상 유지해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인류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점점 더 깊은 기도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할 때에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의 네 단계에 대해 소개합니다(존 포웰 목사).
첫 단계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따라 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기도가 아니라 교회에서 들었던 기도를 자신의 입으로 흉내 내며 기도하는 것, 이것이 기도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기도의 두 번째 단계는 다른 사람의 기도를 따라 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여 자신만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단계입니다.
기도의 세 번째 단계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까지를 하나님께 토로하는 기도입니다. 나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슬픔, 아픔, 괴로움, 뿐만 아니라 즐거운, 기쁨, 감사, 찬양 등.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언어가 필요 없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단계, 바로 이러한 단계가 가장 깊은 기도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말씀을 따라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5분 정도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문(시를 인용하여)/
아버지, 세상 속을 걷노라면 때로 벅찬 감동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지으신 세상이기에 어느 곳에 머물든지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아버지, 제가 당신을 알기 훨씬 전에,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저를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이 우주를, 이 환상적인 동화의 나라를 지으신 것은 제가 그 안에서 뛰어놀고 그 안에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그토록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 되심은 무엇입니까? 당신을 그토록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는 저희이거늘,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 저희를 그토록 사랑하게 하십니까?
아버지, 당신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당신의 힘은 부드러운 연민입니다. 생명을 주심으로써 권능을 보이시는 당신, 당신은 너무나 크시기에 저희의 선물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을 사랑하도록 저희를 초대하시는 까닭은 저희를 기쁨으로 채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저를 채워 주십시오. 당신의 선과 당신의 지혜와 당신의 힘이 흘러넘치도록,
당신이 제 곁에 계시기에 인생이라는 연회에서 결코 고아가 되지 않고 아늑함과 평안함 속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성장할 때까지 당신은 기다리십니다. 제가 어린아이의 의존심에서 서서히 벗어나기를. 당신은 저를 초대하십니다. 제 자신이 되기를.
사고하며 의문을 품고 실패하면서 성장하기를.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머뭇거리기보다는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걸어 나가는 것을 보기 원하시는 당신이십니다.
당신은 저를 성장에로 초대하십니다. 질문을 던지며 당신의 세상을 헤쳐나가 저 자신을 위한 해답을 찾아 나가도록.
아버지, 당신의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세상을 저희의 손에 맡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인생의 여정에서 두려움에 싸일 때 저희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당신의 아들로서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세상을 마치 저희가 만든 것처럼 살았음에 당신께 용서를 청합니다. 저희가 잘못할 때 바로잡아주십시오. 필요할 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십시오. 손을 높이 잡고 사랑으로 마음을 묶으며 당신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세상 안으로 걸으렵니다.
어느 날, 이 덧없는 삶이 끝나는 날, 영원한 고향에 닿아 당신의 둘레에 오롯이 서렵니다. 거기서 춤추고 노래하며 기쁨에 넘쳐 소리치렵니다. 당신이 저의 눈을 들여다보실 것이고 그때,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참으로 평온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