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에 찬 끈질긴 기도와 믿음
(눅 18:1~8, p,126, 시 50:15, 369, 368장)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제목이 없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큰 병에 걸리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그래도 나아가 기도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그리 절박한 문제가 없을 때에는 기도가 잘되지 않습니다. 몇 분 기도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만큼 기도할 제목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기도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경우가 적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기도해 보아도 별다른 변화도 없고 응답도 없고, 그래서 몇 번 기도해 보고 중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위 '기도의 능력'을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에 어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루에 몇 시간을 기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자세와 태도와 마음가짐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 기도를 삶에서 중단하지 않는 사람,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사람, 일평생 기도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본문 1절에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우리에게 권면하십니다.
낙심은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키고 떠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제일 무서운 시험은 낙심하는 일입니다.
낙심을 이기는 비결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분이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바라는 마음에서 흔들림이 없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2절에 불의한 재판관이 등장합니다. 재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사람 정도는 쉽게 무시합니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앞세운 나머지 매우 교만한 사람입니다. 안하무인입니다.
그런데 3절에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정당한 판결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과부는 아무 데도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절실했습니다.
과부의 상황을 다시 보십시오. 그녀는 억울한 일을 당하여 원한에 사무쳤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원한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상은 재판장 한 사람뿐입니다. 그에게 매달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매달릴 필요성이 있습니다. 집요하게 하나님께. 기도의 영성은 갈급한 영혼의 토양에서 자랍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행위 자체가 이미 응답이요 구원입니다.
4~5절에 재판장은 공의를 집행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계속 찾아와 괴롭게 하고 번거롭게 하니 귀찮아서라도 그녀의 원한을 해결해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기도하는 일을 멈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해서 쉽게 좌절하고 돌아서는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시작할 때에는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해내려면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 40편 1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패배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내가 부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단 10:12, 갈 6:4).
용혜원 목사님의 <기다림>이라는 시입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기다림이 있네. 우리네 삶은 시작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위로받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며 살아가네.
봄을 기다림이 꽃으로 피어나고 가을을 기다림이 탐스런 열매로 익어가듯 삶의 계절은 기다림의 고통, 멋, 그리움이지 않은가 기다림은 생명, 희망이지.
우리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데 어느 날인가 기다릴 이유가 없을 때 떠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네 가슴은 일생을 두고 기다림에 설레이는 것. 기다릴 이유가 있다는 것.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달팽이가 인내로 방주에 도달한다.” 그렇습니다. 신앙자에게 있어서 인내는 소중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찾아가려면 우리에게 인내라는 필수 덕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적합한 때, 가장 적합한 타이밍을 아십니다.
인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하나는 어렵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감당해 나가는 일반적인 개념에서 인내를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의 또 다른 차원은 소망 중에 기다릴 줄 아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인 인내요 기도에서 나오는 인내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75세의 나이에 자녀에 대한 약속을 받습니다. 10년을 소망 중에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자식을 주시지 않습니다. 늙고 초조해진 나머지 몸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얻습니다. 그 후 15년 이 더 지난 후에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아들 이삭이 태어납니다.
진실된 믿음은 인내하는 일로 인정을 받습니다. 야고보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습니다(1:4). 로마서에서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 했습니다(롬 5:3~4).
6~7절에 예수님은 재판장이 한 말을 경청하라고 하십니다. 재판장은 공의에는 관심이 없지만 계속 찾아와 번거롭게 하기 때문에 그 여인의 원한을 빨리 해결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한 재판관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간구를 번거로워서 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기도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마태복음 7장 11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면서, 은총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실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있음에도 기도할 수 있는 사람, 죽음이 임박한 위기 상황에서도 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승리합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하는 믿음으로 세상 염려와 걱정과 환난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복음송을 아실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인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 조건은 믿음입니다. 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달 되는 것과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신다’는 믿음이 축복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본문 18장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기 과부는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힘없고 나약하고 아무 배경이 없는 한 연약한 과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자신의 문제 아니면 가족의 문제, 이웃의 문제, 직장 문제, 결혼 문제, 장래 문제, 자녀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업 문제, 건강 문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제 등등 수많은 문제를 기도함으로 해결 받아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끈질긴 기도가 응답의 역사를 봅니다. 끝까지 중단하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사람,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그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본문은 기도와 관련하여 지칠 줄 모르고 꾸준히 기도하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1절).’ ‘자주 그에게 가서(3절)’ ‘ 나를 번거롭게 하니, 늘 와서(5절)’ ‘밤낮 부르짖는(7절)’ 등이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한마디로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권면입니다.
영국의 '죠지 뮬러' 목사님은 오직 믿음의 기도로 6천 명의 고아를 길러낸 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합니다. 뮬러 목사님은 일평생 5만 번의 기도의 응답을 받았노라며 간증했습니다. '조지 뮬러'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의 응답받는 기도의 6가지 원칙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첫째,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공로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신 그 은혜의 확신을 그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 기도 전에 먼저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혹시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이 있는지 그것을 살펴보고 그 죄악을 회개하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그가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답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넷째,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목적을 그가 분명히 가지고 있었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 정신으로 그가 기도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끈기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 빨리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끈질기게 견디는 인내력을 그가 가지고 있었답니다.
여섯째, 작고 사소한 일들도 그가 기도하는 섬세함을 가졌습니다. 큰일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뢰하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8절 하반부에서 주님은 혼잣말로 되뇌이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에게서 갈급한 영혼으로 기도하는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영혼의 사람으로, 기도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힘들고 어려울 때도 주님을 향한 소망 중에 기다리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포기하게 하며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과 사단에게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 서는 날에 오롯이 인정받게 하시고 상급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얻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