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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0 안겨서 갑시다

덕정교회 2024. 10. 17. 08:44

안겨서 갑시다(1:31~32, p.260, 43:1~3, 405, 406)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출애굽 1세대들)이 애굽을 나와서 1년 동안 광야를 통과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한 회고입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느냐 다시 광야로 돌아가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다시 광야로 들어가 40년을 방황하게 되었고, 결국 그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비극을 본문은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그것은 불 신앙(32)’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밤낮으로 불기둥 구름기둥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매일 먹으면서도 불 신앙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불신앙에 빠진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들은 지난 1년 동안 크고 두려운 광야”(1:19)를 지나 이곳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습니다. 광야는 길도 없고, 마실 물과 먹을 양식도 없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두려운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그들은 지난 1년을 생활했습니다.

불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상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기대도 사라지고, 해방의 감격도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동경하여 다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어린 아들이 아빠가 지붕에 올라가 거니는 것을  보고서 나도 지붕에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사다리를 밟고 한계단 한계단 신나게 오르다 말고 아래를 쳐다 보는데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위에 게신 아빠만 바라보고 올랐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인데 그망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기보다는 엄청난 현실의 문제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앙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정을 도식화시켜서 오늘날 우리에게 대입해 보면 애굽은 불신 세계를 가리킵니다. 광야는 전반적인 삶의 여정을 의미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섭리는 불신 세상에서 살아가던 우리를 인도하여 광야교회에 일원이 되게 하시고 종말에는 영원한 천국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여정이란 광야를 지나가고 있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이 광야는 낮에는 작열한 태양 빛이 내리쪼이고 밤에는 음산한 추위가 닥쳐오는 곳입니다. 광야는 힘겨운 곳입니다. 어느 곳 하나 마음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습니다. 광야는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무서운 곳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안고 가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에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는 모래 위에 길게 펼쳐진 발자국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가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슬펐던 순간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항의하듯이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데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왜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사람아,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을 당하는 시간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있는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란다.”

 

모세는 하나님을 안아주시는 분(31)’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 자세와 태도입니다. 우리의 신앙 자세와 태도에 따라 하나님의 품에 안겨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 끌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끌려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절하며 버티기 하는 모습입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자세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광야 여정은 참으로 힘겹고 고달픈 길입니다.

반대로 안겨 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맡기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30절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땅바닥에 주저 앉아 끌려가는 삶을 사노라면 시야가 점점 좁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눈 앞에 것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자연히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아집과 고집과 편견으로 가득한 모습입니다. 꽉 막힌 사람이 됩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안겨 간다는 것은 여유가 있습니다. 시야가 넓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가는 곳에 내 눈도 함께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르는 곳에 나의 마음도 있습니다. 때로는 목말을 태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인생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기대와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골로새서 32~5절 말씀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끌려간다는 것은 온갖 땅바닥의 더러운 것들을 자신에게 묻히는 삶입니다. 더러울 때로 더러워진 모습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안고 가는 영혼은 깨끗함과 성결함을 보장받습니다. 비교적 깨끗한 영혼과 맑은 정신과 강건한 육신을 유지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314~1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교우 여러분! 세상은 광야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이 편하고 풍요로워져도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진보해도 광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 모든 것들이 잘되어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을 것처럼 보인 사람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남모르는 한숨이 있고,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의 광야를 건너고 있는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의 안아주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경험하며 살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다정하고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는 말씀들을 찾아서 묵상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131절 말씀입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이사야 463~4절 말씀입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사야 4915절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위와 같은 말씀들을 찾아서 깊이 묵상하기를 권면합니다. 묵상은 내 자신을 묵상한 말씀의 자리(모세의 자리, 이사야의 자리)에 갖다놓고 그려보는 일입니다. 오늘의 모세, 오늘의 이사야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묵상을 통해 모세처럼,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안아주심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내 자신이 마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마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 것처럼 모든 것을 믿고, 고백하고, 실천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4).”

기도를 했으면 마치 응답된 것처럼 믿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마치 하나님과 함께 거닐고 있는 것처럼, 마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고백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지날 때에 질질 끌려가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 품에 안겨 가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고 의지 순종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잠언 169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예레미야 923~2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복음송 <내 인생 여정 끝내어>를 부르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문 향해 말 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내 길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시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2. 이 가시밭길 인생을/ 허덕이면서 갈 때에/ 시험과 환란 많으나/ 예수 인도하시네/ 내 길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시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시네

3. 내 밟은 발걸음마다/ 주 예수 보살피시사/ 승리의 개가 부르며/ 주를 찬송하리라/ 내 길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시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기도문

주님, 이왕에 주님을 따를 바에 끌려가는 신앙이 되지 말게 하시고 주님 품에 안겨서 가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불 신앙과 불순종을 과감하게 잘라내게 하셔서 사랑스레 안아주시고 인도하시며, 때때로는 목말도 태워주시는 주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행복한 신앙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