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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2 외로움에 둘러싸인 한 영혼의 고백

덕정교회 2020. 11. 21. 12:52

외로움에 둘러싸인 한 영혼의 고백

(19:13~22, p.779, 8:28~30, 393, 397)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욥기를 읽어 가노라면 한 영혼의 처절한 아픔과 외로움을 만나게 됩니다. 아픔과 고난 속에서 욥이 들려주고 있는 영혼의 외침은 코로나 시대에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을 경험하는 온 지구촌 사람들의 외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욥이 경험하고 있는 삶의 실존을 들여다봅니다.

1. 형제들이 낯선 사람 대하듯 합니다.

2. 내 친척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3. 집에 여종들마저도 욥의 말을 먹어주지 않습니다.

4. 아내도 남편의 숨결을 싫어합니다.

5. 자식들도 가련한 외인 취급을 합니다.

6. 동네 어린아이들이 조롱합니다.

7. 친구들과 사랑하는 이들이 원수로 돌변했습니다.

8. 피부와 살이 뼈에 붙어있습니다. 피골이 상접할 지경입니다.

9. 결론적으로 누군가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한 마리의 가련한 새와 같은 처지입니다.

 

욥은 동서남북, 사방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슬픈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는 외로움과 고독, 소외당함과 버림받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이란 욥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외로움은 모든 사람의 실존입니다. 다윗은 시편 102:6~7에 자신은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으며 지붕 위에서 밤을 새우는 참새와 같다고 했습니다.

외로움은 현대인의 만성적 질환입니다. 현대인의 삶을 가리켜 거울은 있으나 창문이 없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누에고치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지은 집에 스스로 갇히어 산다고 말합니다.

 

외로움의 원인을 몇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감염병이 창궐하여 집 밖을 나가는 일이 쉽지 않은 분위기라든가 아파트(주택) 구조라든가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외로움에 빠뜨립니다. 개인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뒤쳐진 사람들은 쉽게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호소합니다. 영적인 요인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본질적인 외로움이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아담 이후 하나님과 단절을 경험한 이후 내면 깊은 곳에 양면적인 감성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숨고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과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냥 두고만 보지 않으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 주십니다.

 

오늘도 말씀 속에서 우리를 찾아와 만난 주시는 주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욥이 어떻게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는가를 묵상하면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베풀어지기를 축복합니다.

 

1. 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말합니다(21~22).

 

여기에 인간의 겸허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에서 일평생 배우고 배워도 모자라는 것이 겸허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언어와 태도에서 겸허함을 연습하고 훈련해 가십시다.

 

겸손과 관련된 좋은 글귀를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ㅇ 겸손은 검보다 강하다. 승리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ㅇ 숯불이 아름다우나 재로 묻지 아니하면 곧 사라지는 것 같이 덕의 빛이 크나 겸손으로 덮지 아니하면 오래가지 않아 소멸된다.

ㅇ 교만은 천사를 떨어뜨려 마귀가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ㅇ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그 첫째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

ㅇ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풍부한 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것을 받는 손이다.

 

2. 그는 누구에게든지 원망과 불평과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습니다.

 

원망이나 불평이나 분노라는 것은 자신이 당당한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그렇지만 나의 당당함이 지나쳐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공격성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는 일체의 원망과 불평과 분노를 자제하고 오히려 나의 친구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21)며 애원합니다. 욥은 자존심을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매우 온유한 사람입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성숙한 인간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보여 준 욥의 반응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귀감이 됩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쿼블러 로스는 임상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5단계를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이를 적용 하여 인간이 자신의 운명 앞에서 내면이 어떻게 성숙해 가는가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1) 거절의 단계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2) 분노의 단계입니다. 왜 하필 나여야 하는가? 묻습니다.

3) 협상의 단계입니다.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충분히 사례하겠다며 애원합니다.

4) 체념의 단계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갖게 되는 감정이 체념입니다.

5) 수용의 단계입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가 됩니다. 출렁거리는 감정이 잠잠해집니다. 자아를 내려놓음으로 얻어지는 평화를 경험합니다.

 

교우 여러분, 내면의 세계가 더욱 성숙해져 가는 삶을 지향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겸손하며 화평을 도모하는 인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23~24절을 읽어보면 욥은 아픔과 고난 속에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가 어디엔가 기록되어 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욥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자기 사랑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남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의 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자존감을 높여가야 합니다. ‘나는 귀한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야!’ ‘나는 예수님짜리야!’

 

4.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은 처절한 상황에서도 믿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아픔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고통에서 구원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5절에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구속자요 살아계신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구속자는 히브리말로 고엘인데 어떤 사람이 빚을 지거나 이로 인해 종살이할 때 가장 가까운 친족 중에 토지나 몸값을 주고 건져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25: 47-9; 2: 20; 32: 6~ ).

구속자의 개념은 예수님께로 옮겨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되셔서 위기에 처한 백성들을 건져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6: 6; 72: 14; 41: 14; 43: 14; 44: 24 참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다시 부활하심으로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욥은 구원의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희망 중에 기다리며 초조하게 기다린다고 했습니다(26~27). 우리도 욥과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끈을 놓아 버리지 않는 지고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난에 대한 좋은 해석, 두 가지만 소개합니다.

비쳐(H.W. Beecher)- “고난은 하나님의 심부름이다.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써 하나님의 신임의 증거라고 간주해야 한다.”

맹자-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고 할 때,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히고 그 근골(筋骨)을 고생시키고,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육체를 궁핍케 하고, 그의 하는 일을 다 어지럽게끔 한다.”

 

욥기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의 흔들림 없는 믿음에 복을 주셨습니다. 고난받기 전에 가졌던 건강과 명예와 재산을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갑절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남서울 교회 정복석 장로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1961년에 시골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내와 세 자녀를 이끌고 올라와서 처음에는 서울역 앞에 큰 도매상의 배달부로 수고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여 저에게 복을 주셔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 지 20년이 지나 한국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는 영육 간에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천마화학 공업주식회사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에 제기할 수 없는 무서운 시험이 왔습니다. 당시 두 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한 공장에 화공약품이 폭발하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공약품이 폭발하니까 불길은 하늘로 치솟고 삽시간에 온 공장은 불길에 휩싸였고 그 화재가 얼마나 컸는지 2백 미터 떨어진 집까지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참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망한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요란스럽게 망해야 합니까? 다른 사람은 망해도 소리 없이 망하니까 괜찮은데 이것이 무슨 꼴입니까?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하자 하늘로부터 강한 힘이 왔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그 불타는 공장을 바라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연거푸 세 번 외쳤다고 합니다.

그 후 정 장로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화재가 일어나기 전의 재산보다 30배의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우리의 삶이 언제나 해피앤딩((happy ending)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자가 격리기간을 잘 이겨나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가 흔들림 없는 신앙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의 되기를 다짐하여야 하겠습니다.

불안하고 두렵기로 하면 한이 없고 끝이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의 난관을 극복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일들이 버티고 있고 해서 인생은 산 넘어 산이요 강 건너 강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삶이 체질이 되고 삶이 되기가 쉽상입니다.

그러나 거친 세파에 의하여 뿌리채 흔들리는 연약하고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깊이 뿌리내린 견고함을 소유한 신앙의 사람이 되십시다. 감사합니다.

 

기도문/

우리가 언제나 의지하고 앙망하는 주님, 기적과 능력과 구원과 치유의 역사로 함께하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병원에서 주택에서 격리되어 생활하고 있는 교우들을 위로해 주시고 승리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물리쳐 주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