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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9 지성소의 삶을 꿈꾸며

덕정교회 2025. 1. 17. 09:43

지성소의 삶을 꿈꾸며

(12:12-17, p.367. 4:9~11, 190, 191)

 

오늘 말씀의 제목은 지성소의 삶을 꿈꾸며입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대면하기라도 하면 당장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율법을 하나님께 받아 백성에게 전달하던 모세도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18~21).

그런데 죄인된 인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달리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주심으로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길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지성소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해 봅니다. 집을 방문하는 사람을 맞이할 때, 마당에서 만나는 사람 거실 정도에서 만나고 돌려보내는 경우 안방까지 불러들여서 교제 할 수 있는 사람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성소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장소인 안방에 해당됩니다. 지성소는 성전 뜰을 지나고 성소를 거쳐야 들어가는 안방이나 침실에 해당됩니다.

지성소는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일 년 단 한 차례씩 죄 사함을 위해 들어갔다가 곧장 나와야 하는 거룩하고 구별된 장소였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 누구에게든지 열려져 있는 시은소가 되어 있습니다(22~24).

 

함석헌 선생님의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일부 내용입니다.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히브리서 12장은 지성소에 이르는 삶을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항상 열려져 있는 하나님의 품을 향해 나아가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1. 1~3/ 경주자의 삶을 요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썩지 아니할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 상을 받도록 달음질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달리기 경주로 표현했습니다. 히브리서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1) 우리의 신앙 경주는 외롭지 않습니다. 수많은 관람객과 응원단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선 믿음의 선진들이 관람객이 되어 천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응원을 힘입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 신앙 경주를 위해서는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세상적인 자만이나 애착 등 장애물을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짐을 짊어지고서 달려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의 옷차림을 보면 1g의 무게라도 줄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짊어지고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죄의 짐을 지고서는 신앙의 경주에서 잘 달릴 수 없습니다.

3) 신앙 경주를 위해서는 인내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고비가 있습니다.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어떤 일이든지 중도하차하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시며 인내하셔서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참고 인내하며 견뎌내는 경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4) 예수님은 믿음의 경주에서 최고의 모범이 되십니다. ''라고 번역한 헬라어는 '선구자' 혹은 '개척자'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 주님은 믿음의 길을 개척하고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앞서가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또한, '온전하게 하시는 이'라는 단어도 예수님께서 믿음의 가장 완전한 모범이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이 드러났던 절정의 순간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을 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난과 수치를 모두 참아 내셨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참아 내기 힘든 고난과 수치로 뒷걸음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내 힘으로 참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가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주님께서 믿음으로 걸어가신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믿음의 모범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 믿음의 대상이십니다. 예수님은 결승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향해, 예수님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승리한 경주자에게는 큰 영광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올림픽에 금메달을 받게 되면 체육 연금으로 매월 100만씩이 지급됩니다. 부상도 많아서 해당 경기연맹단체들은 상당액의 상금을 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에서도 신앙의 경주자들에게 줄 각종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2. 4~11/ 지성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의식하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겪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시험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어버리셨거나 배반하셨다고 결론짓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아버지 되심을 기억하며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것을 권면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허락하셨고, 심지어는 그 일을 정하셨다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아들을 편하게만 키우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징계와 꾸지람을 아끼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그는 참 아들이 아니요 사생아이지 않겠는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를 과잉보호식으로 양육하시지 않으시고 회초리를 대시고 책망을 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실에 화초로 자라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눈보라 몰아치는 엄동설한에도 꿋꿋하게 이기며 견뎌내는 사철나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죄와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맞서 보았는가? 우리가 단단하고 야무진 당신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히 설 수 있도록 훈련시키십니다. 그 훈련의 과정은 땀과 눈물을 흘릴 만큼 수고롭고 혹독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훈련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며 실수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과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3. 12~17/ 지성소에 이르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경건한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고 하십니다. 소진된 상태에서도 담대할 것을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하거나 봉사하는 일을 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2) 곧은 길을 만들고 저는 다리로 어그러지지 않게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곧은 길은 수레바퀴 자국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단한 수레바퀴가 지나면서 다져진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핍박과 회유 속에서도 진리에서 어그러지지 않으며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바른 삶을 살아갈 것을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저는 다리다리에 힘이 없어 절뚝거리며 걷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는 영적 전투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고 신앙의 회색지대에서 회귀를 염두하고 있는 자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는 믿음이 약한 권속으로 하여금 절뚝거리지 말고 고침을 받도록 하여 단단하고 곧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 위로하며 붙잡아 주는 구원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3) 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나 조직이라도 위기나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내부 분열과 갈등이 쉽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고 노력을 쏟아부어서라도 화평과 거룩을 이룰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라고 권면합니다.

주목할 것은 히브리서 기자가 화평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거룩도 함께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화평만 강조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좋은 게 좋은거라 생각하며 비진리와의 타협도 서슴치 않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화평에 힘써야 함과 동시에 그 화평이 진리 안에서 일어나도록 거룩도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이 없는 화평, 진리 밖에 있는 평화는 모두 거짓 화평일 뿐입니다.

 

4) 지성소를 꿈꾸는 삶을 위해서는 두려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죄 가운데 떨어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2)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아 버린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신앙의 가치와 영적인 축복을 세상과 육신의 것을 얻기 위하여 팔아넘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쓴 뿌리 나서 자신도 괴롭히고 남도 더럽히지 않는가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마음에 쌓인 상처들이 표출됨을 이야기합니다(독기).

우리들의 마음 밭에 쓴 뿌리는 어제 오늘에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생겨난 것이요 거슬러 올라가면 태어나기 전부터 형성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린 시절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시기입니다. 어른 때의 행동유형과 태도의 85%6세 이전에 굳어지고 그 어린 시절에 몸에 밴 것들이 어른이 되도록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찰스 셀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 몸은 가정을 떠나지만 우리의 가정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로 반응을 드러냅니다.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슬픔, 자기연민, 자기 증오, 의기소침, 무관심, 열등감, 불안정, 실패, 죄의식, 어둡고 침침함, 낙심, 실망 등입니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적개심, 자만심, 궤변, 의기양양, 우월감, 경쟁의식, 완고함, 고집불통, 배우기 싫어함, 망상, 비통, 분개, 비판적, 지배적, 소유욕 등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화평치 못하고 잘못된 욕망에 노예가 되어 자신의 기업마저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12:14-17).

 

(4) 지성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쓴 뿌리를 제거하는 일이 필수적인데,

첫째는 자신 안에 쓴 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나에게 쓴 뿌리가 존재하는지를 진단하는 방법은,

화를 잘 내고

말을 함부로 하며

정서적으로 굴곡이 심하며

율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면 마음에 쓴 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쓴 뿌리를 뽑아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쓴 뿌리를 슬퍼하고 애통하여야 합니다(4:19).

내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4:6).

고침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의 권능으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치유됩니다(고전 6:9-11, 9:14).

 

결론입니다. 평생 하지 않던 달리기를 처음 하게 되면 얼마 가지 못해 숨이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쉽게 피곤해집니다. 그러나 이 달리기 운동이 결국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내일도 달리고 그 다음 날도 달리고 꾸준히 달리게 만듭니다. 그렇게 한 달 뒤가 되면 몸이 가벼워지고 더 많은 스트레스도 쉽게 이겨 낼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이러한 달리기와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신앙의 달리기를 하도록 훈련시키십니다. 물론 말씀대로 살기보다 말씀을 등한시했을 때의 편안함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의 강도를 높여가십니다. 그 과정이 참으로 힘들지만 그러나 그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나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성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신앙의 경주자임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때 우리는 지성소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기도문/

주님, 저희로 단단한 신앙으로 연단을 받고 잘 훈련된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안방, 지성소에 머물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와 사귐 가운데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적 부요와 충만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