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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2.02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

덕정교회 2025. 2. 1. 11:51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

(84:10-12, p.864, 왕상 8:29~30, 438, 208)

 

<청년의 뜰>이라는 모임을 지도하고 있는 변호사 한 분의 신앙 간증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모태 신앙인으로서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검사가 되었고 중앙부처에서 20년 이상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승승장구하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좌천이 되어 지방의 지청장으로 발령을 받습니다. 주위 분들의 권면으로 기관장들로 구성된 성경공부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매주 말씀을 공부하는 중에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자신이 해 왔던 일이 죄인들을 불러와서 형벌 받게 하는 일과 승진하고 출세하려는 일 밖에 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더 이상은 기다려 주시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모든 부귀와 영화의 길을 접고서, 주님의 일에 헌신을 하고자 명예퇴직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고 고통이 따를 때, 거기에 주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건강 문제든지 자녀에 관련된 일이든지 생업이나 사업상의 고충이든지 간에 그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삶에 이의를 제기해 보고 문제 의식을 가져봄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뜨듯 미지근한 신앙을 소유하고서도 스스로는 제법 잘 믿는 신앙인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일날 교회를 출석하면서도, 세상적인 욕망과 지위를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눈이 팔려 불신자와 구별되지 못한 삶을 무감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의 욕망과 허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을 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질주하던 나의 인생을 멈춰 서서 돌아보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때때로 당신께 가까이 다가오도록 부르고 계셨지만, 그때마다 나는 성공하고 뜻을 이루면 그때 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주저하던 세월이 얼마인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복을 받으면 봉사하고 헌신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우선적으로 순종하여 전적으로 주님께로 나아가는 결단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는 행복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841~2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주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합니다. 주의 전을 향해 늘 달려가고 싶습니다(1~2). 성전에서 머물러 지내고 싶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로 시간과 열정을 채우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주님과 교회를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적은 일도 적은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낮은 일도 낮은 일이 아닙니다. 교회 출석하는 일이 가장 귀하고, 주님께 드리는 것이 최고로 기쁘고, 교회를 섬김으로 마음이 뿌듯한 사람, 세상일보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더 영광스러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이시여,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주의 집에서 하루가 더 행복합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주인 노릇하는 것보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10).’

여기서 주의 집, 주의 전, 주의 궁정가시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짓고 그곳에 영이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사모하는 일이 곧 하나님을 사모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 성전의 개념은 건물로서 성전의 의미를 넘어서서 성전의 실체가 되시는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내 마음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도 있는 데까지 확장됩니다(고전 6:16). 그래서 이제는 눈에 보이는 성전에 앞서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마음 상태를 우선시 여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더 낫다는 것을 지난 주간 기도원에 머물면서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원에서 머물던 5일 동안은 세상에서의 5천 날보다 더 유익하다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다 그렇습니다. 질적인 면에서 볼 때, 주의 집의 한 날은 세상의 천 날보다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적인 면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 동안이 주님 없이 나 혼자서 일하는 천 날보다 더 많고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과 교회에 머무르는 것이 귀하고 복된 일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일을 마치 출석 체크나 하려고 나오는 것처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에 더 머물기를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놀라운 기쁨과 은혜와 축복과 능력이 있습니다.

과거 시골교회 청년들은 한 번 교회에 나오면 좀처럼 집에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밤늦게까지 남아서 지냈습니다. 가난한 전도사님 사택에서 밥을 얻어먹고 심지어 밤을 잤습니다. 거기에다 짓궂은 청년들은 전도사님과 사모님 사이에 들어가 자기도 했습니다. 월요일 날 아침 일찍 에야 집에 갔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몰입하다 보면 세상에서 활동은 무시되고 포기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불성실한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김으로 호흡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고픈 갈망으로 가득한 심령은 주께 힘을 얻고 더 얻어 실제적인 삶의 투쟁에서도 처절하게 이겨내며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려져 있음으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세상일에서도 성공하며 승리하는 삶을 이루어낼 줄로 믿습니다.

 

아무튼 주의 전을 사모하며 봉사하는 자들에게 큰 복이 주어집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도 많고 체험한 것도 많습니다.

시편 843~8절 말씀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세상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떠돌던 제비나 참새도 성전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생활을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 주의 성전에서 쉼과 안식을 얻지 않겠습니까?(3)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 사는 성도들의 명예와 영광과 사업과 성공을 지켜 주십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만날지라도 그곳으로 하여금 기쁨의 샘터로 바꿔 놓게 되리라고 했습니다(5~7).

이 말씀은 어려운 환경과 운명을 극복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고통의 시기를 만났을 수 있지만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샘을 파서 결국 은혜의 샘터로 바꿔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힘을 서로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건강의 힘, 아는 것의 힘, 배운 것의 힘, 돈의 힘, 지위와 권력의 힘을 쫓아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고 달립니다. 아침 6시만 되면 길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12시에도 길거리마다 차와 사람이 쏟아져 다닙니다. 언제 쉬고 언제 자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 어디에선가 힘을 더 얻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무엇에서보다도 주님께 힘을 얻는 자로 살아갑니다.

 

조국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여 독립운동을 하고, 민족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김구 선생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해방된 조국 청사에서 유리창을 청소하는 소사가 되어 살고 싶다고 했다지 않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은 교회 가까운 곳으로 살림집을 이사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예배드리는 일과 교회를 봉사하는 일이 최고의 영광이요 행복으로 여겨집니다.

 

존 맥아더의 <참된 예배>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교회에 싫증이 나면 그것은 그 교회의 설교가 어떠한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를 말해 주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교회에 흥미가 없거나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설교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 때문이다. 만일 내가 예배에 열중할 수 있도록 목사님이 무엇인가를 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교회에 간다면 그것은 당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종종 예배 장소에 있으면서도 거룩하지 않은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골방에 들어가는 것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밀을 좋아하지만 그 밀을 빻지 않는다. 그들은 옥수수를 얻게 될텐데도 그것을 모으러 들판에 나가지는 않는다. 과일이 나무에 달려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따지는 않을 것이다. 물이 그들의 발밑에 흘러도 그 물을 마시려고 몸을 굽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원하는 심정을 갖고 은혜의 강가로 달려 나가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찬양대의 좋은 찬양을 듣고 설교자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는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생활은 내가 무엇인가 능동적으로 행할 때에 그 감격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한마디로 나 없이 주님 살 수 없듯이 나는 주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이런 심령으로 주님을 찾아 나아와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분은 만군의 주시오 만 왕의 왕이십니다. 교회는 이런 분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두 사람씩 마주 보시고 저를 따라서 하십니다. ‘주일 하루라도 성전 뜰에 머무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빨리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성전에서 회개의 기도와 남을 위한 중보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이 성전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예언자의 소리가 드높이 울려 온 누리에 불꽃처럼 퍼져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를 들어오는 자마다 은혜를 충만케 하시고 제단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위로와 용서를 받게 하시며 이 성전에서 앉아 머무르는 자마다 힘을 얻게 하시고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되게 하옵소서.

주 하나님, 슬픔의 상복을 입고 들어 왔던 자에게 기쁨의 옷으로 갈아입혀 주옵소서. 무거운 짐에 눌려 고달파 하는 자가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돌아가게 하옵소서.

주여, 이 전은 오직 하나님의 집이오니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놀라운 일들이, 멋진 사건들이,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끝없이 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