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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입니다

덕정교회 2021. 3. 13. 18:37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입니다(124:1~8, p.898, 380, 304)

 

모든 물체가 움직이는 데는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기계이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도 살아가는 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에너지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병을 앓지 않아도 배터리가 방전되듯이 기력이 쇠하여 돌아가신 경우도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물리적인 에너지 외에 다른 에너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물리적 에너지를 움직이고 조종하는 심리적인 에너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적인 에너지는 물리적인 에너지보다 더 중요합니다.

심리적 에너지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부정적인 에너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에너지 창고가 있는데 하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는 창고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는 창고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부정적인 에너지의 양은 대체로 반비례합니다.

 

긍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많이 채워져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적게 채워져 있습니다. 부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많이 채워져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적게 채워져 있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의 창고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부정적인 에너지의 창고에 채워진 양이 각각 다릅니다. 사람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은 영향에 따라 긍정적인 에너지와 부정적인 에너지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주변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자란 사람은 긍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많이 채워집니다. 이런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적게 채워져 있습니다. 반면에 무관심과 거부, 그리고 미움과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부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많이 채워집니다.

이런 사람은 긍정적인 에너지 창고가 적게 채워집니다. 상담할 때 내담자의 가족 상황과 어렸을 때 성장 환경과 가족과의 관계를 묻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사람마다 자신이 많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부족하면 부정적인 에너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채워진 부정적인 에너지와 긍정적인 에너지의 양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에너지의 성격 변화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성은 변하지 않아’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어려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어라는 말들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에너지의 성격이 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진정한 변화는 사람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8:7~8).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고후 5:17).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세워지고 쓰임 받는 과정을 보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죄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성령님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124:1).”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이라는 가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 되어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어 주신 역사입니다. 출애굽 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은 줄곧 그들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었으며 40년 광야를 지나면서도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고 무사히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입성하여 차지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이방인들의 침입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대적하는 세력이 자신들보다 강하여 객관적으로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이 되어 주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경우를 통해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 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자식이 대형사고를 치고 잘못되었어도 부모는 자식 편입니다. 내 자식을 다른 사람이 안 좋게 말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때론 자식을 책망하거나 회초리를 대더라도 사용한 회초리를 부러뜨려버리고 할퀸 종아리를 어루만지며 약을 발라 주십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미워지는 남편이라도 다른 사람이 흉을 보거나 안 좋게 말하면 참지 않습니다. 가족은 언제나 한 편입니다.

 

제 친구 목사가 들려준 목회 실수담입니다. 교인 가운데 여동생 같은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된 사람이 엉망이었습니다. 하루는 여집사님이 목사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힘들어하는 여집사의 형편을 듣고 있던 목사가 단호하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집사님, 고생 그만하려면 망설이지 말고 당장 이혼하세요.’

나중에 들려 온 이야기가 목사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목사를 만나고 돌아간 여집사님은 목사의 말에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섭섭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그래도 참고 사노라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기도하면서 이겨내 보자고 권면해 주실 줄 알았는데, 당장 이혼을 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부부는 항상 한 편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 편에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이스라엘 편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나 책망마저 일종의 사랑의 채찍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 나라들을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신 후에는 그들을 어김없이 부러뜨리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징계 가운데 있을 때라도, 고난 가운데 신음한다고 해도 그때도 역시 하나님은 우리 편이심이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1:12).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8:15). 하나님께서도 너는 내 아들이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성령님도 인을 쳐 주십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편에 서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1~32)”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 긍정적인 에너지는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의 원천이요 근원이시며 공급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공급받을 수 있는 영적인 에너지는 심리적인 에너지, 물질적인 에너지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3~5절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지 않았다면 겪게 되었을 일을 말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지 않았다면 대적자들에 의해 삼킴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삼키다라는 표현은 미처 손도 쓸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6~8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노래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이는 그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사냥꾼이 짐승을 잡기 위해 덫을 놓습니다. 새가 그 올무에 걸리면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올무를 누군가 끊어주어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면서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는 올무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올무와 그물 될 수 있고 우리의 잘못된 욕망이나 바르지 못한 습관이나 질병 등이 덫이 되어서 도무지 나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7:26).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풀어놓아 자유케 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20).”

 

우리 다함께 찬양을 드려봅시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2x)

주 말씀 하시길 쇠사슬 끊겼네 우리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 구원받았네, 성령 받았네, 기뻐하겠네- - -

 

주님은 우리의 접어진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날게 하십니다. 꺾여진 날개를 치유해 주심으로 높은 하늘을 날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자포자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 안에서 다시금 용기를 내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40:28~30)”고 말씀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공중을 지배하는 자가 이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악한 영들을 제압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세우는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우리의 도움은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힘이 부족한 부모님도 아닙니다. 철없는 자녀도 아닙니다. 마음뿐인 형제도 아닙니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참일 때에 아브라함 링컨의 참모 한 사람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십니까?” 그때 링컨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가를 묻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인가를 물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심을 의심 없이 믿으십시다. 절대권력과 절대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심을 굳게 믿고 담대하기를 바랍니다(49:15). 그리고 우리 역시 일평생 하나님 편이 되어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문(찬송 377)/

1. 전능하신 주 하나님 나는 순례자이니/ 나는 심히 연약해도 주는 강하옵니다/ 하늘 양식 하늘 양식 먹여주시옵소서/ 먹여 주시옵소서.

2. 수정 같은 생명수를 마시도록 하시며/ 불과 구름 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나의 주여 나의 주여 힘과 방패되소서/ 힘과 방패되소서.

3. 요단강을 건널 때에 겁이 없게 하시고/ 저기 뵈는 가나안 땅 편히 닿게 하소서/ 영원토록 영원토록 주께 찬양하리라/ 주께 찬양하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