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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3 기도 충만은 성령 충만의 지름길입니다

덕정교회 2021. 5. 22. 09:21

기도 충만은 성령 충만의 지름길입니다

(1:12~15, p.187, 7:37~39, 526,361)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 승천하시고 난 다음 약속하신 대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심오한 진리를 입증하는 사건일 뿐 아니라,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주님의 약속하심의 성취입니다.

 

흔히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歷史)를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구약을 성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시대라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직접 예언자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당신의 사랑과 구원계획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인 신약시대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함께 사셨던 시기입니다. 33여 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기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명백히 보여 주셨던 시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다가 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성령님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역할이 끝나고 성령만이 활동하는 시대라고 뜻은 아닙니다. 삼위의 하나님은 늘 내적인 친교 속에서 구원사업을 계속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강림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도 없는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곁에 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성경을 통해 보면 성부이신 하나님과 성자이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던 데 비해서 성령님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 사랑 그리고 구원의 선물을 베풀어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당신이 떠나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요한 16:7)이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성령님의 선물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의 선물이 베풀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살 전 5:17).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 문도는 성령님의 선물을 가득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선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기도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은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오늘부터라도 기도하는 삶을 시작해보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는 삶에 대해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그들이 고백하는 신의 존재를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며 근본적으로 인정하는 행위다.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탁월한 방법이며 수단이다. 이러한 대화가 없으면 우리는 짐승보다 낫지 못하며, 헤어 나올 수 없는 영원한 비참함에 빠지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다 갚을 수 없는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다. 기도만큼 성도들의 영적인 삶과 위로에 크게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그토록 우리 가까이에 드러내는 수단은 없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귀신이 들려 죽어가는 딸아이를 둔 아버지의 절망과 호소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습니다. 기대를 걸고 예수님께 나왔으면서도 정작 하는 말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달라’(22) 합니다. 지금까지 사방으로 뛰어보았지만 신통한 수가 없었는데, 치유는 불가능할지라도 우선 더 심하지 않게라도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23) 이성으로,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믿음으로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딸아이의 아버지가 믿음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믿나이다고 토로합니다. 곧이어 진정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24).’

주님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씀해 주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29)

 

성경은 나 홀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는 것과 여러 명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한다는 것은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주님께만 집중하여 기도함으로 영혼의 새로움과 부흥을 얻습니다. 반면에 여러 명이 모여 합심하여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은 공동체의 부흥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습니다.

 

합심 기도의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실화를 하나 나누어 보겠습니다. 여러 해 전 달나라를 향하여 아폴로 13호가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쏘아졌을 때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폴로 13호는 현대 과학의 걸작품이요 매우 정교하고 완벽합니다. 고장 날 확률은 백 만분지 일입니다.”

그런데 지구로부터 2만 마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산소통이 터지는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은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고 더구나 지구로 돌아올 방법도 막막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우주 지휘소와 비상 연락을 취하고 회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휴스턴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주 지휘소에서는 다만 북극성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아서 돌아오라고 회신을 보냈습니다. 영원한 우주 미아가 될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때 미국의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아침 9시에 함께 기도하자고 호소를 합니다. 온 국민은 비행사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폴로 13호가 무사히 태평양에 떨어진 것입니다. 비행사들은 배에 오르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그 주간 타임지 표지에 므게 실렸습니다. 비행사 중 한 사람인 스위저트는 기자 회견에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 국민이 합심하여 기도해 주신 힘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사도행전의 처음 두 장은 기도와 성령 받는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일’(1:14)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도하는 일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지름길입니다.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디모데후서 35절에서 지적한 대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같은 모습이 되기 쉽습니다.

 

방전된 진공청소기를 무작정 아무리 끌고 이방 저 방 돌아다녀도 청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원에다 플러그를 끼워야 합니다. 전기라고 하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마치 공룡처럼 대단한 몸집을 가지고는 있지만 기력이 쇠하여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도 못한 상태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 운동을 통해 영적 비만을 조절하고 몸을 가볍게 하면서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4~5).” 그리고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증인이 되기 이전에 먼저 권능을 받아야 했습니다. 누가복음 24:49에서도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 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에 성령님께서 급한 바람처럼 사도들에게 임하셨고, 그들은 담대히 서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성령님은 변화와 성숙의 원동력으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잡히심을 보고 도망했던 사람들, 두려움에 떨면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움츠리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담대히 일어서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사도행전은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의 활동과 사역을 잘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에 이끌려서 사역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탁월함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훈련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과 도우심의 결과입니다.

 

사도행전 4:24-30에서도 예루살렘 교인들이 드렸던 기도제목은 담대히 전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리라”(4:31)고 하십니다.

 

8장을 보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던 빌립이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갔습니다. 거기서 에티오피아의 고급 관료인 내시를 만났습니다. 빌립을 만난 그 내시는 구원 받았고, 세례를 받았으며, 예수님의 복음을 자신의 나라에 전하게 됩니다. 이 일은 빌립 집사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사도행전 9,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의 광채와 영광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직가라는 거리에서 도움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을 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나니아는 자기 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을 도우라고 하신다니?” 그러나 순종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위한 위대한 선교사로 바울이 세워집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주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불러오라 말씀하셨고, 기도하고 있던 베드로에게는 이방인의 구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10:10-20에서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님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셨느니라 하시니~” 그래서 베드로는 갔고, 고넬료와 온 가족이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는 소아시아에서 전도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1차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면서 에베소가 위치한 아시아 지역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7)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드로아에 가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임을 즉시 깨달았고, 그들은 배를 타고 건너가 빌립보에 훌륭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가리켜서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란 인종 종족 지역을 초월하여 누구든지 기도하는 집으로서 교회를 말씀하십니다. 차별하거나 가리지 말고 만민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집으로서 교회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도 먼저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기도하는 일에 매달린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13절은 제자들이 자주 모여 지내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오늘날 다락방은 교회요 성전을 가리킵니다. 교회 예배당에 모였다는 뜻입니다.

14~15절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11명의 제자를 위시하여 많은 여자들을 합쳐서 12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라는 모이게 된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분부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개인별 기도가 아니라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통과의례식 기도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기도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오직 성령충만 내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기다리며 10일 동안을 기도하는 일에만 시간을 바쳤습니다.

 

여기서 기도하는 일은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오직 기도하는 일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절박함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기도에 응답을 주십니다.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핸드폰보다 기도(Haven phone)할 줄 아는 것이 더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핸드폰은 유료 서비스이지만 기도는 한번 가입하면 평생 무료 통화입니다.

핸드폰은 장소에 따라 통화가 안 될 때가 있지만 기도는 어디서나 통화 가능합니다.

핸드폰은 공공장소에서 사용하기엔 눈치 보이지만 기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 가능합니다.

핸드폰의 사용 내역은 통신회사에 남지만 기도의 사용 내역은 하늘나라 책에 남습니다.

핸드폰의 침묵은 쓸데없는 상상을 일으키지만 기도할 때 침묵은 주님이 알아서 접수하십니다.

핸드폰의 업그레이드는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기도의 업그레이드는 하나님의 시선을 끕니다.

핸드폰은 부재중일 때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부재중일 때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만약에 우리 눈앞에 어려운 일이 생겼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내모는 역사라고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잠든 심령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잠이 안 오면 수면제를 먹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두려우면 기도할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총체적 난국입니다. 누구 하나 쉬운 삶은 없습니다. 어디 하나 문제가 없는 분야가 없습니다. 종말적인 상황들이 눈앞에 즐비한 시대입니다. 언제라도 주님이 다시 오신다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1) 성령님은 우리가 믿을 때에 이미 내주하여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십니다(14:16-17, 고전 12:3, 8:9).

2)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은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삼상 16:12, 삼하 2:4, 5:3, 5:18).

3) 우리는 지속적인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할 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기도가 막힐 때는 회개 하는 기도로 다시 시작합니다.

절박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4)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상달 되고 주님의 응답으로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교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3).”

 

기도문/

주님, 저희로 기도하게 하옵소서. 모든 일보다 앞서 기도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나 홀로 골방에서 기도하며 성전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기도하는 일밖에 다른 길이 없는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성령님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교회로 교회 되게 하시고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